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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기 싫다.

엄마가 그랬다. 어렸을 적 나는 어지간히도 지기 싫어하는 꼬맹이였다고.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랬다. 학교엘 갔는데 나 빼고 알파벳을 모두 잘 쓰는 거다. 끝없이 펼쳐진 줄 사이에 앉아 대문자와 소문자가 같은 모양을 한 O,V, X.. 이런 것들만 겨우 쓰고 집에 돌아와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나도 알파벳 배우게 해 달라고 떼썼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니까. 피아노도 그랬고, 조금 더 커서는 보습학원, 과외,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림까지도. 전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들이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나는 아직도 지는 것을 싫어한다. 남들 다 나온다는 토익 900이 아직도 안 나온다는 것을, 페인터를 다룰 줄 모른다는 것을, 손그림이 서투르다는 것을, 내가 당신보다 못하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밤새워 그것을 한다.



문제는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에 있다.





나는 여전히 지기 싫어하는데,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수히 많다. 심지어 그 동안 나는 잘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타인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른 순간 나는 인생 최대의 절망감을 맛볼 수 있었다.


감정의 밑바닥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인정했다. 세상에는 나를 이기는 사람이 많다고. 그것은 내가 남들보다 확실히 **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와 동일한 것이었다. 





받아들이고 좌절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보다 당신의 단어가 조금 더 유려하고, 당신의 글이 더욱 아름다우며, 당신의 이미지가 깊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지기 싫다. 그것이 내게 남은 최후의 자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