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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디자이너 Review/책

손톱


손톱
김종일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겠다. 글의 주제가 참 좋다. 그렇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오글오글 문체는 견딜 수 없엉....ㅋ

참.. 전반적으로 글이 좀 오글거리는데, 굉장히 내 눈을 사로잡은 씬이 있었다. 이 부분만 다른 작가가 썼나? 싶을 정도로 문체가 절제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마치 그 장면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마냥 생생하다. 이 부분을 블로그에 옮겨 쓰기 위해 연체료를 물어가면서까지 이 책을 집에 두었다. 그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났다.




 그 여름을 기억한다.
 사방에서 개털 그을리는 내가 진동하고, 논두렁에는 배가 터져 죽은 개구리들이 나뒹굴었다.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개구리 사체에 개미떼가 까맣게 달라붙어 살점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나는 논두렁을 따라 걸어서 기찻길옆에 살고 있는 종례 네에 놀러갔다. 같은 반 친구였던 종례는 열 살임에도 늘 코를 훌쩍대는 바보 같은 년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종례와 어울렸던 건 걔네 집 뒤편으로 어른 허리까지 오는 깊이의 시커먼 웅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거기가 내게 더없이 매력적인 놀이터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연탄재와 온갖 쓰레기가 떠 있고 그 사이로도 생명력 강한 수생식물들이 돋아나 있는 그 웅덩이가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날도 나는 목에 그어진 땟줄을 밀며 웅덩이 물가에 앉아 헤엄치는 장구애비를 겨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종례의 동생이 내 곁에 다가온 건 슬슬 돌팔매질에 싫증이 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무해그? 어루루가?"

 종례와 여섯 살 터울이었던 녀석이 서툰 발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녀석에게서 지독한 쉰내와 지린내가 풍겨 와서 나는 게걸음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몇 발짝 옮겼다. 그러나 녀석은 성가신 날벌레처럼 끈덕지게 내게 들러 붙었다.

 "누나, 꾸이가 무아찌까?"
 
 녀석은 연방 웅덩이를 가리키며 내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댔다. 한여름의 불볕이 내리쬐는 사위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웅덩이 한가운데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물방개라도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들이마시고 내려간 모양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녀석을 돌아보았다. 녀석의 떡진 상고머리 위로 똥파리가 붙어 기어 다니고 있었고, 푹 주저 앉은 콧대 밑으로 누런 코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미간 사이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지고 축 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이 공연히 밉살맞아서 나는 웅덩이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종례네 집으로 눈을 돌렸다. 종례는 보이지 않았다. 보나마나 TV에 얼굴을 쳐박고 있으리라. 후텁지근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다. 세상에 나와 냄새나는 사내 녀석 단둘뿐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꺼져."

 나는 녀석을 향해 나지막이 씹어뱉었다. 그러나 녀석은 내 말을 잘못 이해한 모양인지 주머니에서 진득진득해진 젤리 하나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누나, 마이써. 무어."

 "꺼지라구. 누가 이런 거 먹는대?"

 그러나 녀석은 막무가내로 손톱 사이에 까만 초승달 같은 때가 낀 손으로 젤리를 쥐고 내 입가에 갖다 대며 먹으라는 시늉을 해댔다. 나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녀석은 물가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젤리를 제 입에 밀어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돌아서던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작고 동그란 등을 본 순간, 발작적인 살의가 치밀었다. 그래서 그 등을 발로 차 버렸다. 괴팍한 담임에게 따귀를 맞고 돌아오다 애먼 비포장도로를 뒹구는 자갈을 걷어차듯이, 귓가에 웽웽대는 성가신 모기를 양손으로 때려잡듯이, 방바닥 위를 구물대는 애벌대를 손으로 눌러 죽이듯이............저항은 없었다. 녀석은 논두렁 위에서 일광욕을 하던 중 인기척을 느낀 개구리처럼 퐁당 소리를 내며 웅덩이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리고 사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녀석은 수면에서 한 뼘쯤 밑에 가라앉은 채로 소리 없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라 붕어처럼 입을 뻐끔대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은 산소 대신 썩은 물을 들이마시며 점점 웅덩이 가운데로 흘러갔다. 건져내야 하나. 녀석이 내게서 멀어질수록 맘속에 파문처럼 일던 일말의 갈등도 잦아들었다. 나는 종례네 집을 바라보았다. 집 안에서는 종례가 TV를 보고 있을 테고, 종례네 엄마가 마당에서 무말랭이를 다듬고 있을 터였다. 그제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던 건 웅덩이에 빠진 녀석이 끝내 죽어버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녀석이 물 속에서 숨이 끊기기 전에 종례네 엄마에게 발견되어 웅덩이에서 건져져서 내가 저를 걷어찼다는 사실을 일러바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금살금 뒷걸음질 쳐서 웅덩이 뒤편을 가로지른 논두렁 언덕 뒤로 몸을 숨겼다. 웅덩이 가운데에 다다른 녀석은 양다리를 개구리처럼 쭉쭉 뻗어가며 발악하고 있었다. 이따금 수면 위로 튀어나온 녀석의 발끝이 웅덩이 위에 작은 파문을 퍼뜨렸다. 단발마의 발악이었다. 빨리 뒈져버려. 나는 얼굴을 간질이는 강아지풀을 손아귀로 쥐어 뜯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민경아! 지금 테레비에서 요술공주 밍키 해!"

 느닷없이 집에서 튀어나온 종례가 웅덩이 쪽에 대고 외쳤다. 재빨리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면 나는 꼼짝없이 년과 눈이 마주칠 뻔했다. 고개를 숙인 채 종례 년의 반응에 귀 기울였다.

 "어, 어."

 종례의 입에서 병신 같은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수업 시간에 오줌 마렵단 소리를 못하고 걸상 위에 싸지르고 말았을 때에도 년은 저 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집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소리와 종례 년의 외침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어, 엄마! 종구 둠벙에 빠졌어!"

 신발도 신지 않은 발소리가 집 밖으로 급박하게 내달려왔다. 그리고 고요는 다시 깨졌다.

 "아이고! 우리 애기 죽어요!"

 그것은 절규였다. 첨벙첨벙. 물에 뛰어 들어가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언덕 뒤에 몸을 숨긴 내게까지 물보라가 튀는 것 같았다. 언덕 위로 눈만 내놓고 동태를 살폈을 때 종례네 엄마는 웅덩이 가운데에 서서 축 늘어진 녀석을 안아들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절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