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생각하는 디자이너 Review/책

99.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제목이 우스꽝스럽다. 심심찮게 빌려보는 책이라 대체 뭔 내용인가 싶어 빌려봤다. 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정신적으로 좀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메인이 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정말로 아내를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꽃을 꽃으로 보지 아니하고 무질서한 다면체의 집합으로 인식한다.

좀 충격이었던 것은 과거에 머물러 사는 남자였다. 자신이 여전히 청춘에 머물러 있던 것으로 생각하고 늙어버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현재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력은 3분 정도로 지속되었다. 하도 많은 환자 글을 봐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버렸나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조로운데 사실은 자신의 일이고,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고 있으나 마치 과거의 일을 설명하는 것처럼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서술하는 모습을 보면 이 책의 저자는 마치 그 사람의 영혼이 옛날에 죽어버린 듯 소름끼치는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현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시원하다. 내가 만약에 그 환자라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신체에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정신에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인식할 정신 자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장애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왠지 후련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모든 것이 망각의 강 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내 머릿 속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 지금 내가 지긋지긋하게 되풀이하는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또 뭐가 있더라, 자폐증을 가진 여자였다. 길거리에 서서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순간적으로 잡아내서 흉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먹어 버린 그녀는 이내 골목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토해내 버렸다. 모든 이를 흉내낼 수 있으나 정작 그녀 자신의 인격은 없다고 했다.

그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들은, 참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싶을 정도로 극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가볍게 읽어 내렸던 것 같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미치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일이다.





'▶ 생각하는 디자이너 Review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98. 카산드라의 거울 1,2  (0) 2012.08.21
번외. 여자의 인생은 옷장 속을 닮았다.  (0) 2011.03.03
100. 이기적 유전자.  (2) 2011.02.11
손톱  (0) 2010.10.11
화차  (1) 201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