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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INFJ에게는 펜과 종이를 주면 됩니다

늘 그랬듯이(?) 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거의 항상...?

최근 그 증상이 더 악화됐었는데 그 이유인 즉슨 내 계획대로 내 인생이 흘러 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크게는 내 인생 계획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매일매일의 루틴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는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수 만 개의 계획과 생각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그것은 제대로 정리가 돼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태로, 내 마음 속에서만 천천히 부유하고 있었다. 매일 일터에서 8시간을 버티고 난 후 돌아온 내 집은 어지러운 내 마음을 대변하듯 역시 엉망진창이었다. 건조가 끝난 빨래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그대로 건조기 안에 있었고 더러운 옷가지들은 방구석에 그대로 뭉쳐져 내 손길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참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도무지 모르겠었다.

 

최근에 은행 업무를 볼 일이 있었는데 여느 은행들이 그렇듯이 역시 내 담당자도 갖가지 재정 증명 서류를 요구했고, 물론 모든 서류들은 제 자리에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든 서류들이 제대로 분류가 돼 있지 않은 상태로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분명 여기에 있는 건 확실한데, 내가 원하는 특정한 문서를 찾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 속에 '이 문서 뭉치들을 정리하자'는 목표가 떠올랐다. 물론 생각이 많은 인프제답게 그 뒤에 정리를 필요로 하는 것들의 수백 가지 목록이 꼬리를 물며 몰려 왔지만, 역시 인프제답게 '현재는 단 한 가지의 목표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에 바로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날 바로 Staples를 갔고, hanging file organizers를 샀고, 그 날 바로 문서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단 한 가지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실행하여 끝내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이상의 목표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그것들이 잘 정돈된 일정으로 나에게 남는가는 또다른 문제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펜과 포스트잇을 꺼내 들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토할 만큼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한 가지 두 가지 적고 보니 그것들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거기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만들어 낸 무수한 계획들에 압도당하지 않은 채 하나씩 처리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고 나의 하루 계획에 방향성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나는 주방을 청소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은 출근하기 전에 내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내가 느꼈던 성취감이 어디서 기인했는가를 깨달았다. 잘 정돈된 계획은 실행의 가능성을 높인다. 나는 그 동안 내 머리 속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계획을 짤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어쩌면 그 그릇된 믿음은 결국 내 자신을 충분히 쉴 수 없게 만들었고(늘 그 계획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어야 하므로) 곧 우울하고 언짢은 감정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나는 매일의 계획을 수립하고(직접 종이에 작성함으로써) 그것을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들이 나의 감정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