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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디자이너 Review/책

낙하하는 저녁 : 마르고, 하얗고, 자유분방한 소녀.



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어쩌다 보니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그것은 단지 내가 책을 고른 서가가 일본 소설 분류였을 뿌냐....엣헴.

이번에는 실연 이야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눈돌아가서 8년 동안 사귄 여친을 찼다. 그런데 그 '다른 여자'는 여친 집에 와서 산다. 그 뿐만 아니라 종종 다른 남자와 자기도 한다. 그 여자가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와 한번 엮인 남자는 죄다 눈이 돌아가서 이혼도 하고 가정도 버리고 정신나간 짓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것은 다케오도, 카즈야도 아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코는 '참 완벽한 여자'다. 하얗고, 마르고, 소녀처럼 자유분방하다. 하나코는 목욕 후에 청량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음료를 컵에 따르는 과정이 묘하기 그지없다.) 그녀가 입는 옷은 취향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두서없고, 가끔 가방 하나만을 들고 훌쩍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원피스와 스타킹, 구두의 조합은 말만 들어도 설렌다. 하얀 발.


책을 읽는 내내 하나코에게 질투했다. 나도 이런 푸르고 투명한 소녀가 되고 싶었는데.



 다행히 앞뒤가 맞는다. 다케오는 잠시 웃고, 그래, 라고 말했다.
 "있지, 남자하고 여자하고 어떻게 연인이 되는지 알아?"
 나 스스로도 내가 조잘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애한테 배웠는데, 이 때다 싶을 때, 상대방한테 페로몬을 바바바방 하고 쏜대."
 다케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같은 사람을, 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안 쏘는데?"
 다케오는 원래 단도직입적인 사람이다. 직설적이고 정열적인 사람,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타입이다. 연애를 할 때도 실천이 있을 뿐, 그래서 다케오는 연애 취향의 인간이었다. 언제든.
 "이상하잖아."
 나는 부루퉁하게 말했다.
 다케오는 아주 고집스러웠다. 옛날옛날, 우리가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무렵.
 "쏘고 있어."
 분명한 목소리로 다케오가 말했다.
 "제대로 쏘고 있다고."
 두 번째 말은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그런 선언을 두 번이나 연거푸 듣고,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제대로 조절 못하는 거 아냐?"
 간신히 그렇게 얼버무렸지만, 글쎄, 라며 다케오가 맥없이 웃어 점점 더 슬퍼진다.
 참 내, 둘 다 제대로 조절을 못하고 있으니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