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집은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집의 장녀였던 나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철이 빨리 들었다. 무엇이든 사 달라고 떼를 쓰면 결국에는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러지 않았다. 비싼 신발, 브랜드 패딩, 어학연수. 이런 것들이 내가 막연히 그렸던 장밋빛 미래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일 적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했다면 아빠는 당장이라도 보내 줄 수 있었다. 대신 빚을 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디즈니 바디 샴푸. 아니 샤워할 땐 비누를 쓰니까, 이건 굳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사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거를 정말 한 번 써 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한 번도 못 써 봤다.
영어 과외, 미술 학원, 문제집, 독서실. 등등을 바탕으로 아빠가 자랑스러워 하는 대학에 진학한 후, 내가 곧바로 시작한 것은 아르바이트였다. 화장품 판촉 알바, 학원 알바, 과외 알바, 식당 알바 등등 내가 가진 노동력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오늘 가게 장을 보러 코스트코에 갔다. 몇 달 동안 눈여겨 보던 베이글 두 봉지를 오늘 큰 결심을 하고 집어 들었다. 그리고 크림 치즈 스프레드도 샀다. 내친 김에 과카몰리 스프레드도 카트에 넣었다. 집에 와서는 토스트기에 잘 구워서 스프레드를 원하는 대로 맘껏 발라 먹는다. 내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산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내돈내산, 의 진정한 정의였다.
어린 나에게 디즈니 바디워시를 사 주고 싶은 34살의 나의 단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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