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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당탕탕 캐나다 살기

인종차별, 그리고 언어차별에 대해.



오늘 일하면서 되게 재밌는 일이 있었다.


스타벅스에 일하면 매일매일 다른 롤을 맡는다. 어떤 날은 카페 틸, 어떤 날은 에스프레소 바, 또 어떤 날은 드라이브 쓰루. 오늘은 드라이브 쓰루에 선 날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주문을 받고 음료를 손님에게 전달해 주는 롤이다. 바에 선 바리스타는 오더 완성의 신속성을 위해 드라이브 쓰루 바리스타와 고객의 대화를 들으며 미리 음료를 완성하는 게 보통이다. 


손님이 미드나잇 민트 모카 프라푸치노에 노휩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 음료는 가운데 부분에 휩크림이 들어가기 때문에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손님에게 'Neither in the middle nor on the top?' 라고 물었고 손님은 'None of them'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에 선 바리스타가 다른 바리스타에게 난 가끔 쟤 뭔 말하는지 이해 못하겠어, 라고 한 것. 난 분명 그걸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른 바리스타가 왓?! 너 린에게 다시 말해봐, 라고 놀라는 반응을 보니 다시 안 들어도 뻔했다. 일단 손님 대응을 마치고 나서 그 친구에게 가서 정면으로 물었다. 너 내가 한 말 못 알아듣는다고 한 거지? 보통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애들은 순순히 인정한다. 그리고 그 뒤에 하는 말이 가관. because of your accent. 난 이제 얘한테 뭔가 한 마디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저번에도 내 억양 가지고 놀리고 I love your accent니 어쩌니 헛소리를 했을 땐 넘어갔는데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 너 그거 알아야 돼, 악센트에 대해 말하는 게 레이시즘이라는 거. 그러니 얘가 화들짝 놀란다. 왓????? 당연히 몰랐겠지. 얘네들은 웃긴 게 피부색으로 놀리는 건 인종차별이란 걸 알면서 언어 가지고 놀리는 게 인종차별인 건 모른다. 그 뒤에 '손님은 내 말 알아들었는데 넌 못 알아듣는 거 보니 너 문제네' 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또 드라이브 쓰루 벨이 울려서 타이밍을 놓쳤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참 많은 생각과 또 의문이 들었다. 참 이상한 게, 스타벅스만 일하면 애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듣는다. 상점, 은행, 보험 전화 문의, 스타벅스 직원 베네핏 관련 전화 문의, 세금 납부 관련 문의, 신규 서버 트레이닝, 치과 교정 상담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영어를 써 봤지만 단 한 번도 내 상황을 설명하는 데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 설사 상대방이 한 번에 못 알아들었다고 할 지라도 재차 말하면 어쨌든 그들은 알아들었고 결국 난 원하는 답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이 영어공부하는 선생님은 린은 스피킹은 완벽하고 대신 글쓰기만 좀 하면 된다고 해서 지금은 주구장창~~~ 라이팅만 하는 상태. 선생님 성격상 입에 발린 칭찬 절대 안하기 때문에 난 적어도 선생님은 정말로 내가 스피킹엔 문제가 없다 생각한다고 믿는다. 근데 왜... 스타벅스만 가면 이러냐고..



캐나다 온 지 이제 2년 반 좀 지났고, 20대 중반을 넘겨 왔기 때문에 악센트 문제는 고쳐지기 힘들 거라는 걸 안다.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기야 하겠지만 원어민처럼 될 순 없다. 물론 스피킹이 선생님 말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스스로도 말할 때마다 문법적 오류를 얼마나 느끼는데....... 근데 이건 너무 심하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잖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정말 진지하다.



최근에 어시 매니저에게서 쉬프트 수퍼바이저에 대한 제의가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린이 쉬프트 하면 잘 할 것 같다고. 지나가듯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진지하게 내 커리어 패스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말이 들어왔다. 나야 나쁠 것 없다. 나중에 회사 들어갈 때 경력 사항에 매니지먼트 능력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여튼 내가 잘 해내기만 하면 좋은 기회인데, 다른 애들이 내 말 못 알아들으면 설득력이 없고 리더십이 떨어진다. 이 문제에 대해 어시 매니저에게 얘기했고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했다. 최근 몇 달 간 너의 progress를 보라고.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나도 자신감을 가졌는데.. 오늘 저딴 일이 일어나서 뭔가 암담했다. 기분이 상했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좀 진지해졌다. 내 미래에 대해..




그리고 나서 집에 왔는데 새로운 인종차별 이슈가 떠올랐다. 플로리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이 탄 차량을 불러 세우고 검문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녀는 플로리다 주의 유일한 흑인 검사였던 것. 정말 번호판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서, 틴팅이 진해서 불러세운 건지, 아니면 그 차에 탄 사람이 흑인이라 그랬던 건지 모르지만.... 여튼 논쟁의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나마 이 스토리가 통쾌해진 이유는 언더독인 줄 알았던 존재가 사실은 favour였던 건데... 나는 그냥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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